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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울렸던 한 장의 사진 그 후 1년

지난해 9월 2일 터키 해안가에 싸늘한 주검으로 떠오른 시리아 난민 꼬마 아일란 쿠르디가 전 세계를 슬픔과 충격에 빠뜨린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하지만 바뀐 것은 없다. 안전한 거처를 찾기 위해 이 작은 아이가 벌인 위험천만한 항해는 여전히 지중해에서 계속되고 있다. CNN은 1일 이들 중 무사히 그리스에 도착해 살아남은 "행운아"들과 쿠르디와 똑같이 안타까운 운명을 맞이한 난민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한 순간 운명 갈린 네 형제 난민 형제 유수프(4)와 유누스(2)는 다른 두 형들과 함께 지난해 10월 31일 터키에서 그리스를 향한 항해를 시작했다. 그러나 곧 궂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높은 파도도 넘실거리며 이들을 덮쳤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차디찬 바닷물로 뛰어 내렸다. 결국 보트는 뒤집혔다. 아버지 하지 샤피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4명의 아들 중 2명의 목숨은 구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참극을 겪은 가족들은 멍든 가슴을 안고 터키 수도 이스탄불로 다시 돌아왔다. 이들은 다리 밑에서 새우잠을 잤다. 아프가니스탄 출신인 유수프와 유누프의 가족은 아프간 무장단체 탈레반의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이같은 항해를 시작했다가 변을 당했다. 비극을 초래한 뱃값은 어른 1명 당 1000 달러, 아이 1명 당 500달러였다. ▶엄마 손 놓친 8살 소녀 라야 레바논에서 그리스를 향해 항해를 시작한 시리아 8세 소녀 라야의 가족은 6시간이 지난 어둔 밤중에 배가 전복돼 바다에 빠졌다. 어머니 리나는 "난 딸의 손을 봤다. 난 라야를 붙잡고 있으려 했지만 곧 다른 사람들이 내 위로 떨어졌고, 라야는 내 손을 놓치고 말았다"고 당시의 악몽을 떠올렸다. ▶쿠르디와 동갑인 하디 쿠르디와 동갑에 똑같은 시리아 출신이지만 쿠르디와 전혀 다른 운명을 맞이한 소년도 있다. 당시 세살배기던 하디는 2015년 10월 5명의 가족과 함께 시리아 집을 떠나 터키에 도착했다. 하디의 가족은 지난 2월 이곳에서 난민 밀반입업자에게 3000달러가 넘는 돈을 내고 3시간짜리 그리스행 항해에 나섰다. 천운으로 그리스에 도착한 하디는 여러 수용소를 전전하다가 지금은 한 호텔에 머물며 친척들이 살고 있는 독일에서 망명 허가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1년 전 쿠르디의 주검에 충격받은 유럽은 국가별 난민 수용 할당량을 논의하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시리아 난민 최소 1만 명 수용이라는 방침을 밝히며 시리나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댔으나 무슬림들의 테러 공격이 잇따르면서 조금 열렸던 문은 다시 닫혀 버렸다.

2016-09-01

IS에 밀려…국민 절반 난민

대량 난민이 탈출하고 있는 시리아는 복잡하면서 다양한 나라다. 정식 명칭은 시리아아랍공화국(Syrian Arab Republic). 시리아는 우선 5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이스라엘·레바논·요르단·터키·이라크다. 공식언어는 아랍어지만 아람어·쿠르드어·아르메니아어·시르카시안어·프랑스어가 쓰이고 있다. 인종구성도 복잡하다. 아랍인이 90%지만 쿠르드족, 아르메니안 등이 약 10%를 차지한다. 수니파 이슬람 신도가 74%로 가장 많고, 기독교인은 10%다. 시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 9월에 독립을 선언했고 전쟁 후 1945년 UN에 가입하면서 독립이 공식적으로 인정됐다. 시리아는 독립 직후부터 바람 잘 날이 없을 정도로 고난의 역사를 거듭했다. 아사드 가문의 독재가 근 반세기 이어지며 국민의 시름만 깊어갔다. 1971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하페즈 알 아사드 전 대통령은 30년 철권통치를 펼쳤고, 아들 바샤르 알 아사드 현 대통령이 정권을 이어 받았다. 국민의 70%가 수니파지만 집권자인 아사드는 12%에 불과한 시아파의 분파인 알라위파다. 아사드 부자는 수니파를 상대로 무자비한 탄압을 이어갔다. 2011년에 중동지역의 민주화운동 '아랍의 봄'이 촉발되면서 시리아에도 반체제 시위가 확산됐지만 아직까지 봄은 오지 않고 내전이 장기화 되면서 오히려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의 이라크 철군 결정이 직격탄이 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시리아의 이웃나라인 이라크내 미군을 모두 철수시키면서 이로 인한 연쇄 작용이 현 시리아 난민 사태를 불러왔다는 지적이 많다. 테러리스트 집단인 이슬람국가(IS)가 이라크에서 세력을 키우며 이들이 사실상 이라크를 접수하고, 혼란을 틈타 시리아로 영역을 넓히면서 지금의 난민 사태가 촉발됐다는 것. 딕 체이니 전 부통령은 노골적으로 "시리아 난민 사태는 모두 오바마의 탓"이라고 말했다. 현재 시리아 국민 2300만 명 중 절반이 난민이다.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지난해부터 시리아의 IS 거점에 대한 공습을 단행하고 있으나 민간인들의 희생도 끊이지 않고 있다. UN에 따르면 지금까지 시리아 내전으로 22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전체인구 2200만명 중 1000만명 이상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일부는 난민캠프에 머물고 있지만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유럽국가로 목숨을 건 여행을 택하는 사람도 많다. UNHCR(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난민이 된 아이들의 절반 정도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시리아 국내에서도 240만명의 학생이 학업을 중단한 상태다. 모두 300만명의 아이들이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고, 전쟁 트라우마를 겪으면서도 제대로 된 치료도 못 받고 있다. 지난해 난민 신청을 낸 시리아인은 모두 15만명에 달했다. 원용석 기자

2015-09-08

난민촌 된 헝가리 부다페스트 역…난민 수천명 역사 앞에서 노숙

헝가리 정부가 2일 수도 부다페스트 중앙역을 폐쇄하고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서유럽 국가로 가는 열차 운행을 중단하면서 역사 앞이 거대한 난민촌으로 변했다. 이날 주요 언론에 따르면, 헝가리는 난민들의 서유럽 열차 탑승을 허용했다가 유럽연합(EU)으로부터 더블린 규약을 어겼다는 비난을 받자 이날 중앙역을 아예 폐쇄해버렸다. 더블린 규약은 EU 회원국에 들어오는 난민은 처음 도착한 국가에서만 망명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자 난민 수백명이 역사 앞에서 텐트를 치고 노숙하며 열차 운영을 재개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앞서 헝가리 국경지역 헤게스할롬을 지나는 열차에서 EU 비자 없이 밀입국을 시도한 난민 수백명이 발견돼 오스트리아 보안당국이 열차를 멈춰 세우는 소동이 빚어졌다. 로만 하슈링거 경찰 대변인은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출발해 오스트리아를 거쳐 독일 뮌헨을 향하는 한 열차에서 300여명의 난민이 발견됐으며 얼마나 많은 난민들이 실제 독일에 도착했는지 확인절차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헝가리가 부다페스트 역사 인근 난민캠프에 몰린 2000여명의 난민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이들의 밀입국을 사실상 방조했다는 비판이었다. 솅겐협정에 따라 EU 회원국을 중심으로 유럽국가 간에는 입국비자 없이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 헝가리는 솅겐협정에 가입된 나라 중 가장 동쪽에 위치해 있어 일단 난민들이 헝가리에 진입하기만 하면 다른 서유럽 국가로의 이동이 쉬워진다. 난민들은 이를 이용해 시리아 난민 우호정책을 밝힌 독일로의 진입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전례없는 난민 위기 속에서 EU 의장국 룩셈부르크는 오는 14일 긴급 내무.법무장관 회의를 소집해 난민 송환정책과 국제협력, 불법 밀입국조직 검거 및 대책 마련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올해 이탈리아와 그리스 등을 통해 유럽으로 유입된 난민은 각각 10만7000명, 15만7000명 등 총 34만명으로 유럽에 도착하지 못한 채 지중해에서 숨진 난민은 2500명에 달한다.

2015-09-02

오스트리아 고속도로 냉동트럭서 난민 시신 71구

차 안서 시리아 여행증명서 나와 불가리아인 운전자 등 4명 체포 당시 빈에선 EU·발칸 정상회의 독일의 '난민 쿼터제' 다시 힘 실려 지금껏 난민들에겐 지중해가 '죽음의 바다'였다. 이제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길로 알려졌던 발칸 반도와 헝가리를 통한 육로에서도 잔혹한 죽음이 발생했다. 더 이상 죽음은 유럽 밖 변경만이 아닌 유럽의 한가운데의 일이 됐다. 27일 헝가리와 접한 오스트리아의 고속도로 갓길에서 헝가리 번호판을 단 7.5t 냉동 트럭이 버려진 채 발견됐다. 근처에서 풀을 깎던 인부가 "트럭에서 이상한 액체가 흘러나온다"고 신고했다. 오전 11시40분 화물칸을 열어본 경찰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미 손상되기 시작한 시신들이 있어서다. 시신은 모두 71구였다. 이 중 어린이가 4명 여성이 8명이었다. 당초 경찰은 "최소 20구의 시신이 있다"고 발표했다. 한스 페터 도스코질 부르겐란트주 경찰국장은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지 못하는 건 시신이 이미 부패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숨진 지 하루에서 이틀 정도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트럭은 26일 오전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인근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당일 오전 9시 헝가리 쪽 국경 카메라에 잡혔다. 사건 현장에 24시간 넘게 주차돼 있었다. 오스트리아 경찰은 "트럭 안에선 시리아 여행증명서가 발견된 점에서 시리아 난민들일 가능성이 크다"며 "이들은 국경을 넘기 전 차량 안에서 이미 질식해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헝가리 경찰은 트럭 운전자를 포함해 불가리아인 세 명과 아프가니스탄 출신 1명을 체포했다. 도스코질 경찰국장은 앞서 "이번 사례가 거액의 대가를 주고 난민 밀입국 알선과 밀매 박해 등을 일삼는 (불법 브로커들의) 조직적인 범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마침 사건 현장으로부터 47㎞ 떨어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유럽연합(EU)과 발칸 국가들의 정상회의가 열리던 중이었다. 비보가 회의를 압도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안전한 곳을 찾아나선 이들이 사망한 사실에 충격을 금할 수 없다"면서 "유럽이 서둘러 문제에 대처하고 연대정신을 갖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경고하는 비극"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엔 그리스-마케도니아-세르비아-헝가리를 통한 발칸 루트에 난민들이 몰린다. 서유럽의 관문인 헝가리에도 하루에 3000명 안팎이 도착하고 있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은 "올 들어 발칸 루트를 이용하는 난민들은 지난해보다 6배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지중해 루트를 이용하는 난민이 5~10% 늘어난 수준이다. 지중해에서도 죽음이 이어졌다. 이날 리비아를 떠나 이탈리아로 향하던 난민선 2척이 지중해에서 전복돼 약 200명이 숨졌다고 영국 BBC방송이 전했다. 각각 50명과 400명 정도의 난민을 싣고 리비아 북서부 주와라를 떠나 이탈리아로 가던 배였다. 로이터통신도 400명 정도가 탄 난민선 1척이 전복돼 약 200명이 사망하고 200여 명이 구조됐다고 보도했다. 이런 비극상에 유럽 내에선 독일이 요구하는 난민 쿼터제가 다시 힘을 받고 있다. 유럽 각국이 의무적으로 쿼터를 정해 난민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과거엔 스페인과 동유럽 지도자들이 고개를 모로 저었었다. 정상 절차를 밟는 이민자도 급증하고 있다. 영국 통계청은 올 3월까지 1년간 순이민자가 33만 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동유럽 이민자들에게 일자리를 개방한 2005년(32만 명)을 웃돈다. 영국 정부의 당초 목표치는 10만 명이었다. 영국의 경제 사정이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나은 때문으로 보인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201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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